
세계 원유의 목줄로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이 여덟 달 넘게 사실상 닫혀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2일부터 4일까지 한국을 국빈 방문하며, 이번 방한은 2018년 이후 8년 만이다. 그는 방한 직전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 위기를 정면으로 꺼냈다. 메시지는 짧고 분명하다. 바닷길이 끊긴 시대에는 믿을 수 있는 우회로가 곧 국력이라는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튀르키예의 땅길에 한국을 초대한 그의 제안은, 전쟁이 다시 그리는 세계 무역 지도 위에서 한국이 어느 길을 택할지 묻고 있다.
여덟 달째 막힌 바닷길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공습을 시작한 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교통을 대부분 막아 왔다. 미국은 4월 13일부터 이란을 겨냥한 해상 봉쇄로 맞섰다. 11월 2일 기준으로도 이란의 상선 공격이 해협 통행을 흔들고, 미국의 이란 항만 봉쇄가 이란의 석유 수출을 옥죄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 두 해협의 해운 차질에 대응할 대체 물류망 구상도 함께 소개했다.
에르도안이 내민 대안
그는 해협의 안보 불안과 선박 통행 제한이 세계 에너지 시장과 국제 교역을 직접 타격한다고 진단하며, 이번 사태가 대체 교역로의 가치를 다시 확인시켰다고 밝혔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놓인 자국의 입지를 교통·물류 인프라로 떠받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철도 기반시설, 물류 거점, 지능형 교통체계를 한국 기업과의 공동 투자 분야로 꼽았다. 전쟁으로 주요 에너지 수송로가 막힌 상황에서 중동과 유럽을 잇는 헤자즈 철도 복원 사업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숫자가 말하는 계산서
2025년 튀르키예의 대한국 수출은 약 11억 4천만 달러, 수입은 102억 6천만 달러였다. 그는 이 격차를 좁히며 교역을 150억 달러로 키우자고 했다. 흑해 연안 시노프 원전은 한국전력과 기술·경제 조건을 검토해 왔지만, 재원 조달과 발전 단가, 자국 경제에 돌아올 이익을 따져 파트너를 고르겠다고 선을 그었다. 다른 국가와의 협의도 저울에 올라 있다는 단서도 달았다. 튀르키예 항공우주산업(TUSAŞ) 자회사 TEI의 PD170 엔진에 한국이 보이는 관심에는 반가움을 나타냈다.
길을 묻는 두 나라
에르도안 대통령은 양국 우정이 6·25 전쟁 때 싹튼 형제애와 상호 신뢰에 뿌리를 두며, 내년이 수교 70주년이라고 강조했다. 바다가 막힌 시대에 두 나라가 땅 위의 길을 나란히 닦을 수 있을지, 그 답은 우정의 수사가 아니라 계약서의 서명에서 나올 것이다.

